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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 잃고, 어머니까지 사망' 5·18 유족, 손배 승소
기사 작성일 : 2024-05-07 18:00:31

5·18 민주화운동


[ 자료사진]

(광주= 박철홍 기자 = 계엄군에게 여동생과 어머니를 희생당한 유족이 2건의 정신적 손해배상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했다.

광주지법 민사3-1부(김연경·남수진·이미주 부장판사)는 A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의 위자료 액수를 1심 700여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증액했다고 7일 밝혔다.

A씨는 1980년 5·18 당시 계엄군 총칼에 사망한 여고생의 오빠이자, 당시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섰다가 계엄군에게 구타당해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다 사망한 여성의 아들이다.

앞서 A씨는 여동생의 사망과 관련해 정신적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해 2천700만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또 A씨는 어머니의 사망에 관한 정신적 피해도 주장하며 별도의 소송을 제기해 승소해 1심에서 700여만원 배상 판결을 받아내는 등 2건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각각 일부 승소했다.

항소심은 어머니의 사망에 관한 정신적 손해배상 재판으로, A씨는 가족의 죽음으로 정신적 피해를 당했다며 추가 위자료 지급을 요구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망한 A씨의 어머니 위자료는 장기간 배상이 지연된 것을 참작해 일부 증액한다"고 판시했다.

A씨의 여동생은 1980년 당시 취업을 준비하던 고등학생(19세)이었다.

집을 나간 여동생은 실종됐고, 왼쪽 가슴에 자상과 함께 여러 발의 총상을 입고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후 A씨 여동생의 죽음을 두고 '계엄군이 여학생의 젖가슴을 도려냈다'는 소문이 돌았고, 5·18을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은 그녀의 사연을 "두부처럼 잘려 나간 어여쁜 너의 젖가슴"이라는 가사의 노래로 만들어 희생을 기렸다.

여동생이 실종되고 A씨의 어머니는 딸을 찾아 나섰다가 공수부대원에게 붙들려 대검, 개머리판 등으로 무차별 구타를 당해 중상을 입고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1986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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