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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에 터전 잃은 트라우마…"불이야" 주민 대피시킨 택배기사
기사 작성일 : 2024-04-30 18:00:32

배송 중 화재 목격해 주민 대피시킨 쿠팡 택배기사 전찬혁(47)씨.


[원주소방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주= 강태현 기자 = "약 5년 전에 우리 집에도 불이 나서 다 홀라당 타버린 적이 있었어요. 택배 일이 매우 바쁘긴 했지만, 그 트라우마 때문에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었어요."

배송 업무 중이던 쿠팡 배송 기사가 원룸 안에서 발생한 화재를 목격하고 주민들을 대피시켜 피해를 막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30일 강원 원주소방서에 따르면 지난 9일 오후 2시 2분께 원주시 우산동 주상복합 건물 3층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자는 불이 난 건물에 택배를 배송 중이던 쿠팡 기사 전찬혁(47)씨였다.

"3층 원룸에 배송할 물건이 있어서 올라갔는데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화재경보기 같았어요. 불이 난 것 같은 원룸까지 가보니 출입문 사이로 연기가 새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119에 신고했죠."

안에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씨는 힘껏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에 건물 밖으로 이동해 불이 난 원룸 상태를 확인했고, 짙고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목격했다. 꽤 규모가 큰 화재 같았다.

"불이 건물에 번질 것 같은 생각에 우선 3층짜리 건물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불이야'하고 외쳤어요. 우선 주민들부터 대피시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다세대 주택 화재(PG)


[이태호 제작] 일러스트

전씨의 다급한 외침에 건물 안에 있던 주민들이 하나둘씩 빠져나왔고, 그사이 소방대원들도 현장에 도착했다.

소방대원들은 미처 대피하지 못한 암 환자까지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킨 뒤 화재를 진압했고 같은 날 오후 2시 17분께 불을 완전히 껐다.

불이 난 원룸에는 다행히 사람이 없었던 탓에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대피하던 과정에서 주민 3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 치료를 받았다.

화재로 인해 원룸 전체가 불에 타고 3층 복도 전체에 그을림이 생겨 소방 당국 추산 1천700만원의 재산 피해가 나기도 했다.

전씨는 약 5년 전 충북 제천에서 화재로 인해 터전을 잃었던 경험 탓에 빠듯한 택배 배송 일정에도 불구하고 화재 의심 현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다.

전씨는 "경보기 소리나 화재 연기에 트라우마가 있어 더 예민하기도 하지만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며 "다친 사람이 없어 다행일 따름"이라고 말했다.

원주소방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주민 대피에 앞장선 전씨를 내달 7일 열리는 제54주년 원주소방서 개서식 기념행사에 초청해 용감한 시민 표창을 수여할 예정이다.

이강우 원주소방서장은 "화재 현장에서 용기를 발휘해 시민 생명 보호에 헌신한 점에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화재와 방화문 (PG)


[홍소영 제작]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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