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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 경고등] 위기 속 작은 희망…영월 옥동초교의 실험
기사 작성일 : 2024-05-04 08:01:13

[※ 편집자 주 = 지난해 합계출산율 0.72명. 특히 같은 해 4분기에는 합계출산율이 0.65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내려왔습니다. 이른바 '저출산 쇼크' 이슈가 국가적 화두가 되고, 우리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특히 농어촌, 지방 중소도시 등 지방의 위기감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는 '지방소멸' 위기 징후 현장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자체 등의 고육책, 일부 부분적인 성과 등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합니다.]


농어촌 작은 학교의 그림 같은 풍광


[촬영 양지웅]

(영월·삼척= 양지웅 기자 = 교육이, 학교가 지역사회를 살릴 수 있을까?

저출생으로 인한 학령인구 절벽은 이미 시골 작은 학교를 덮쳤다.

어떻게든 학교를 지키고 싶은 선생님들은 공동주택에 홍보물을 붙이거나 어린이집을 돌며 부디 우리 학교에 입학해주십사 읍소해야 할 판이다.

지역사회 역시 신생아 출생신고가 마을 경사가 될 만큼 빠른 고령화로 허리가 굽었다.

학교와 마을이 함께 소멸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이 추진한 농어촌유학이 이들 모두를 활짝 피어나게 해 관심을 끈다.

학교는 어떻게 지역사회에 생기를 불어넣었는지 살피고자 현장을 찾았다.


전통 예절 배우는 어린이들


[촬영 양지웅]

◇ "친구가 생겼어요" 유학생 몰려든 시골 학교…소멸 위기 막아

"선생님이 내 친구 해주면 안 돼요?"

재작년 영월 옥동초등학교에 입학한 김수연(당시 7세) 양은 1학년 교실에서 울 듯한 표정으로 담임선생님을 향해 친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신입생이 2명인데 나머지 한 친구는 남자라 함께 놀 동성 친구가 없었던 까닭이다.

농촌 작은 학교에서는 동갑 친구 한 명 없이 상급생들과 함께 교실을 쓰는 일이 허다하지만, 담임인 이혜련 선생님은 마음이 아팠다.

2년이 지난 지금, 수연이는 많은 동갑 친구와 함께 3학년 교실에서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강원교육청이 2년째 추진 중인 '농어촌유학' 덕분이다.

이는 수도권 등 도시의 학생과 그 가족이 강원의 생태교육환경과 특성화 교육과정을 찾아 유학하게 해 지역과 학교 소멸을 막고는 도농 교류 프로그램이다.


영월 옥동초등학교


[촬영 양지웅]

해당 사업으로 올해 초등학생 132명과 중학생 2명 등 유학생 134명이 도내 학교로 전학했다.

작년 도내 합계 출생아 수가 6천700명인 것을 고려한다면 적지 않은 수치다.

게다가 부모는 물론 형제자매까지 400여명이 지역에 1년 이상 정착하게 돼 그 효과는 더욱 크다.

옥동초의 경우 매년 많은 졸업생이 학교를 나가지만 신입생은 턱없이 부족해 학년당 1개 학급을 유지하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유학생 15명이 학교를 찾았다. 전교생 43명 중 3분의 1 이상이 외지인인 셈이다.

이 덕분에 학교는 6개 학급을 유지하면서 많은 어린이의 웃음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혜련 교사는 "많은 학생이 '친구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읍내 큰 학교로 발걸음을 옮기는 실정"이라며 "농어촌유학을 통해 학교에 또래 친구가 많아지면서 모둠 활동 등이 활성화하고 아이들도 더 높은 사회성을 기르고 있다"고 말했다.


1대 1 원어민 영어 수업


[촬영 양지웅]

◇ 1대 1 원어민 수업까지…열악한 사교육 인프라 학교가 해결

학교 구성원들은 농어촌유학의 최고 장점으로 '친구 만들어주기'를 꼽았다.

김용인 옥동초 교장은 "농어촌유학은 유학생뿐 아니라 전교생 모두에게 큰 혜택이 돌아간다"며 "작은 학교에서 많은 친구를 만들어준다는 것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더욱 값지다"고 강조했다.

교육 당국의 든든한 지원으로 알찬 특성화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덤이다.

실제로 옥동초를 찾아갔을 때 교실에서는 미국 원어민 교사와 학생은 1대 1 영어 수업에 열중이었다. 지역 특성상 열악한 사교육 인프라를 학교가 채워주는 것이다.

체육관에서는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는 아이들이 즐겁게 웃었고 강당에서는 학생들이 드럼과 베이스기타, 키보드, 일렉트릭 기타 등 악기를 연주하며 밴드 수업을 이어갔다.

이 학교는 지난달에만 생태 체험학습, 드론 교실, 연극, 단종문화제 문예 행사, 천문대 교육, 감자 심기 등 자연 친화적이고 지역 특색을 가득 담은 활동들을 진행했다.


골프 배우는 학생들


[촬영 양지웅]

다른 지역도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었다.

이달 2일 찾아간 삼척 오저초에서는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야구를 배우고 있었다. 전교생이 10명을 밑돌던 작년에는 꿈도 못 꾸던 일이었다.

야구를 마친 학생들은 통학버스를 타고 골프연습장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익숙한 듯 골프채를 골라 힘껏 휘두르며 스트레스를 날렸다.

김예원(12) 양은 "서울에 살 때는 집에서 동물을 키운다는 건 꿈도 못 꿨는데 여기서 고양이를 기를 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처음에는 골프가 낯설었지만 이제 너무 재밌고 서울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넓은 운동장에서 뛰노는 어린이들


[촬영 양지웅]

◇ 온 가족 이주로 마을 활력…지자체 지원이 장기 체류 촉진

'자녀의 심한 아토피', '사교육으로부터 해방', '아이들을 자연에서 뛰놀게 하고자…' 도시 학부모들이 시골행을 결심하는 데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이들 대부분은 지금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작년 농어촌유학생 50명 중 절반가량이 올해도 참여했다. 특히 옥동초의 경우 작년 유학생 10명 모두 올해도 머물겠다는 의사를 밝힐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초등생 두 딸과 함께 서울에서 삼척으로 온 송은희(44) 씨는 "학교와 학원만 반복하는 아이들의 삶이 이곳에서 더 풍성해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며 "프로그램이 끝나면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젊은 부부들이 시골로 모여들자 마을도 활기를 찾았다. 아이들 웃음소리는 골목을 채웠고, 주말이면 도시 사람들이 유학생 가정으로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유학생 학부모들은 열정을 가지고 지역의 각종 축제와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했다. 지역 학부모들은 도시에서 온 이웃들에게서 여러 정보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즐거운 인라인스케이트 수업


[촬영 양지웅]

지자체의 든든한 지원은 유학생 가정의 장기 체류를 돕고 있다.

교육청은 이들의 체류비용을 1년간만 지원하기 때문에, 지역에 더 머물고 싶은 학부모들도 경제적 부담에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영월의 경우 이들 가정이 지역에 남고자 한다면 자녀가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매달 40만원씩 체류비를 지급한다.

학교에도 교육 경비를 최대 1억원까지 지원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알차게 마련할 수 있게 했다.

영월군 관계자는 "학교와 지자체, 마을 공동체가 마음 모아 유학생 가정의 지역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며 "이들이 보다 오래 머물고 싶어 하는 '농어촌유학 성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원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옥동초 어린이 밴드부


[촬영 양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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